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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62007
한자 梵窟寺
영어공식명칭 Beomgulsa
이칭/별칭 대성암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류성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670년 - 범굴사 창건
폐찰 시기/일시 1882년 - 범굴사 화제로 폐사
개칭 시기/일시 1921년 - 범굴사에서 대성암으로 개칭
개칭 시기/일시 1993년 - 대성암 대한 불교 태고종 소속에서 개인 사찰로 변경
개칭 시기/일시 2009년 - 대성암에서 범굴사로 개칭하고, 개인 사찰에서 대한 불교 조계종 소속으로 변경
개칭 시기/일시 2009년 - 범굴사 대성암 개인 사찰에서 대한 불교 조계종 소속으로 변경
중수|중창 시기/일시 1375년 - 범굴사 나옹이 중창
중수|중창 시기/일시 1912년 - 범굴사 정념이 중건
중수|중창 시기/일시 1928년 - 범굴사 대성암 보광이 중건
중수|중창 시기/일시 1936년 - 범굴사 대성암 보광이 중건
중수|중창 시기/일시 1981년 - 범굴사 대성암 대웅전, 삼성각, 종각 재건축
중수|중창 시기/일시 1996년 - 범굴사 대성암 화재로 소실된 후 중창
현 소재지 범굴사 - 경기도 구리시 우미내길 50-140[아천동 57]지도보기
성격 사찰
창건자 의상 대사
전화 02-457-5500

[정의]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

[건립 경위 및 변천]

범굴사(梵窟寺)는 670년(신라 문무왕 10)에 의상 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고려 시대인 1375년(우왕 1)에 나옹 화상이 중창했으며, 임진 왜란으로 소실된 후 1750년에 방지성이 초암을 짓고 확장을 했다. 1882년에 다시 소실된 후 폐사되었다가 1912년에 승려 정념이 중건하였다. 1928년에 승려 보광 스님이 대웅전과 나한전 등을 건립한 후 대성암(大聖庵)으로 개칭했고, 1936년에 보광이 중건하였다. 6·25 전쟁 때 재차 소실되었으며, 1954년에 당시 주지였던 승려 석하가 재건했고, 1981년에 대웅전, 삼성각, 종각이 재건축되는 등 이후 몇 차례 중건이 이루어졌으나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후 1992년에서 1996년 사이에 현재의 전각들이 모두 재건되었다. 1993년에 대한 불교 태고종 소속에서 개인 사찰로 변경되었다가, 2009년에 다시 범굴사로 개칭하면서 대한 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이 되었다.

[활동 사항]

범굴사는 예불과 법회 등 불교 사찰의 고유한 활동 외에 특별한 활동은 없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범굴사는 2016년 2월 현재 법당인 대성전과 삼성각·종각·요사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016년 1월 현재 주지는 승려 정산이다.

[관련 문화재]

범굴사에 문화재는 없지만, 법당 뒤편에 쌀바위로 알려진 바위가 있다. 대성암을 창건한 의상 대사가 수도하던 바위라고 하는데, 그곳에서 쌀이 나와 의상 대사에게서 가르침을 받고자 했던 사람들이 공양을 할 수 있었고, 그 쌀을 천공미(天供米)라 하였다고 한다. 후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쌀을 얻으려고 구멍을 크게 뚫자 타 버린 쌀과 뜨물만 나오다가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관련 문물]

대웅전·삼성각·범종각·요사채 등 사찰의 전각들이 있고, 안동준 거사 대성처 중창건 공덕비가 세워져 있으며, 법당 뒤쪽에는 범굴사 재산에 관한 기록인 '범굴사 불량권'과 '범굴사 불량 시주기' 암각문이 있다.

[참고문헌]
  • 『구리의 역사와 문화』(구리시, 1996)
  • 경기 관광 포털(http://ggtour.or.kr)
  • 아차산 대성암 범굴사(https://www.youtube.com/watch?v=EtlRHZfFL8o)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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