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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42068
한자 趙云仡
영어공식명칭 Jo Unheul
이칭/별칭 석간(石磵),서하옹(棲霞翁)
분야 역사/ 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미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332년연표보기 - 조운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357년 - 조운흘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363년 - 조운흘 국자감 직강 임명
활동 시기/일시 1377년 - 조운흘 좌간의 대부 임명
활동 시기/일시 1388년 - 조운흘 서해도 관찰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390년 - 조운흘 계림 부윤 부임
활동 시기/일시 1392년 - 조운흘 강릉 대도호부사 부임
몰년 시기/일시 1404년연표보기 - 조운흘 사망
거주|이주지 노음산(露陰山) - 경상북도 상주시
거주|이주지 고원강촌(古垣江村) - 경기도 광주시
부임|활동지 계림 부윤 - 경상북도 경주
부임|활동지 강릉 대도호부사 - 강원도 강릉시
묘소|단소 조운흘 묘 - 경기도 구리시
성격 문신
성별
본관 풍양(豊壤)
대표 관직 밀직 제학|계림 부윤|강릉 대도호부사

[정의]

경기도 구리 지역에 묘소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 풍양(豊壤). 호는 석간(石磵)서하옹(棲霞翁)이다. 평장사 조맹(趙孟)의 31대손이며, 이인복(李仁復)의 문인이다.

[활동 사항]

조운흘(趙云仡)[1332~1404]은 1357년(공민왕 6)에 문과에 급제하여 안동 서기(安東書記)를 거쳐 합문 사인(閤門舍人)이 되었다. 1361년 형부 원외랑(刑部員外郞)에 있으면서 홍건적이 침입하자 남쪽으로 피난하는 왕을 호종하여 다음해 2등 공신이 되었다. 1363년 국자감 직강(國子監直講)이 되고 이어 전라·서해·양광·삼도 안렴사(全羅道·西海道·楊廣道三道按廉使)가 되었다.

1374년(공민왕 23)에 전법 총랑(典法摠郞)이 되었으나 사직하고 경상북도 상주의 노음산(露陰山) 아래에 은거하면서 스스로 석간(石澗) 서하옹(棲霞翁)이라 하며 출입할 때 반드시 소를 타고 다녔다. 이때 「기우도찬(騎牛圖贊)」과 「석간가(石磵歌)」 등의 작품을 지었으며, 자승사 중 종림(宗林)과 교우하면서 초연하게 신선(神仙)에 뜻을 두었다.

1377년(우왕 3)에 다시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가 되었고,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가 되었다. 1380년에는 광주(廣州)의 고원강촌(古垣江村)으로 물러나 있으면서 판교원(板橋院)과 사평원(沙平院)을 경영하였는데, 스스로 원주(院主)라고 칭하면서 헤어진 옷과 짚신을 신고 지내며 역도(役徒)들과 일하였다.

1388년 다시 전리 판서(典理判書)에 기용되고 밀직제학(密直提學)으로 승진하였다. 당시 안렴사(按廉使)의 지위가 낮아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워 양부(兩部)에서 위엄이 있는 도관찰출척사(都觀察黜陟士)를 보내자는 의견이 있었다. 서해도 관찰사(西海道觀察使)로 임명되어서는 사람이 거주하는 섬의 토지와 어염을 5군의 장수와 8도 군관에게 식읍으로 주어 국방에 대비케 하자는 상소를 올렸다. 1389년(창왕 1)에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가 되었고, 1390년(공양왕 2)에 계림 부윤(鷄林府尹)이 되었다.

조선 개국 후 강릉 대도호부사(江陵大都護府使)가 되었다가 이듬해 신병(身病)으로 사직하고 광주 별장(別莊)으로 내려갔다. 다시 검교 정당문학(檢校政堂文學)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당시 조운흘은 조준(趙浚)과 교유가 있었다. 조준이 손님을 전송하는 일로 한강을 건넜다가 같은 반열의 재상(宰相)과 함께 기악(妓樂)과 더불어 술과 안주를 가지고 방문하였다. 하지만 조운흘이 조용히 나무아미타불만 부르니 조준은 풍악을 중지시키고 차만 마시고 돌아갔다고 한다. 경기도 광주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스스로 묘지명을 짓고 73세에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는 『석간집(夕刊集)』이 있다고는 하나 전하지 않는다. 편서(編書)로 『삼한시 귀감(三韓詩龜鑑)』이 있고, 『동문선(東文選)』에 5수의 칠언 절구가 전하고 있다.

[묘소]

『고려사(高麗史)』 열전 조은흘 전에 죽은 후 “양주 아차산 남록 마가야(摩訶耶)에 안장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묘의 소재지가 경기도 구리시로 추정되나 정확한 곳은 알 수 없다.

[상훈과 추모]

조운흘은 1362년 호종공신(扈從功臣) 2등에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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