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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42035
한자 吳哉泳
영어공식명칭 Oh Jaeyeong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진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7년 5월 24일연표보기 - 오재영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0년대 - 오재영, 부산 공립 상업 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10년대 - 오재영, 부산에서 인심상 경영
몰년 시기/일시 1948년 8월 30일연표보기 - 오재영 사망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20년 9월 14일 - 오재영, 부산 경찰서 투탄 사건에 연루
출생지 부산 - 부산광역시
학교|수학지 부산 공립 상업 학교 - 부산광역시
활동지 부산 - 부산광역시
묘소 망우리 공원묘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로 570[망우동 산57-1]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개설]

오재영(吳哉泳)[1897~1948]은 1920년 9월 의열단원인 박재혁이 국외에서 숨겨 가지고 온 폭탄 한 개를 맡아 두었다가 1920년 9월 14일 거사를 결행하는 박재혁에게 내주는 등 의거를 돕다가 공동 혐의자로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오재영은 부산 출신으로 부산 공립 상업 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좌천동에서 인삼상(人蔘商)을 하면서 1919년부터 상해 임시 정부와 연락을 하는 등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하였다. 1919년 9월 강우석이 경상남도 진주 광림 학교(光林學校) 교사로 있으면서 홍수석과 함께 국권 회복 운동을 위한 비밀 결사 혈성단(血誠團)을 조직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하자 임시 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獨立新聞)』과 경고문을 나누어 주고 각처에 배포하도록 함으로써 임시 정부의 선전과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섰다.

진주에서 김두옥(金斗玉)과 김두현(金斗鉉)이 독립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고 오재영을 찾아오자 함께 독립운동을 위해 노력할 것을 서약하고 그 수단으로 격문을 배포하여 조선인들에게 널리 알리고 동시에 독립 자금을 모금하여 중국 상하이에 있는 임시 정부에 보낼 것을 협의하였다. 오재영은 김두옥과 김두현이 독립운동에 착수하려고 하는데 신임장이 없어서 곤란하다고 말하자 그들에게 조선 독립에 관한 고유문(告論文)과 13도(道) 총감부 명의로 된 찬의장(贊議狀) 두 매를 교부하였다.

또한, 1920년 9월 의열단원인 박재혁(朴載赫)이 중국 상해에서 일본 나가사키[長崎]를 거쳐 부산에 입향하여 자기 집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중국 서적상으로 가장해 부산 경찰서를 방문하여 폭탄을 투척, 서장이 중상을 당한 거사가 일어났다. 이때 오재영은 박재혁이 국외에서 숨겨 가지고 온 폭탄 한 개를 맡아 두었다가 1920년 9월 14일 거사를 결행하는 박재혁에게 내주는 등 의거를 돕다가 공동 혐의자로 지목되어 체포되었다. 1921년 8월 3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7호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대구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묘소]

오재영의 묘소는 망우 묘지 공원에 있다. 묘소 앞에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제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서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서 사회를 박삭(剝削)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 지니라. -「의열단 선언」 중에서'라고 새겨진 연보비가 있다.

[상훈과 추모]

오재영에게 1983년에 대통령 표창,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수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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