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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42027
한자 文明煊
영어공식명칭 Mun Myeonghwan
이칭/별칭 지기(知期)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산84-2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진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2년연표보기 - 문명훤,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4년 - 문명훤, 미국 샌프란시스코 갈릴리오 고등학교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29년 - 문명훤, 미국 아이오와 더뷰크 대학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문명훤, 맹산(孟山)에서 3·1 독립 만세 운동 주동
활동 시기/일시 1920년 4월 14일 - 문명훤, 대한민국 임시 정부 내무부 서기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31년 - 문명훤, 미국에서 귀국하여 사업을 하며 수양 동우회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35년 - 문명훤, 미국에서 돌아온 실업가와 유학생을 망라하여 평양에서 환구 동우회 조직
활동 시기/일시 1937년 - 문명훤, 수양 동우회 사건으로 투옥
몰년 시기/일시 1958년연표보기 - 문명훤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68년 - 문명훤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문명훤,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문명훤 출생지 - 평안남도 평양
학교|수학지 문명훤 수학지 - 미국 샌프란시스코 갈릴리오 고등학교
학교|수학지 문명훤 수학지 - 미국 아이오와주 더뷰크 대학
묘소 문명훤 묘소 -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산84-2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수양 동우회 활동

[정의]

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됐었던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개설]

독립운동가 문명훤(文明煊)[1892~1958]은 3·1 운동 때 맹산(孟山)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 정부 내무부 서기를 지내고,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귀국하여 수양 동우회(修養同友會) 사건으로 복역하였다.

[가계]

문명훤은 평안남도 평양(平壤) 출신으로 호는 지기(知期)이다.

[활동 사항]

문명훤은 일제의 강점 이후 1914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항일 투쟁 방법을 모색하다가 병을 얻어 귀국하였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맹산에서 시위를 주동한 후 다시 상해로 건너갔다. 상해에서 영어 전문 학교를 수료하고 1920년 4월 14일 대한민국 임시 정부 내무부 서기로 임명되었다. 그해 6월 24일 사직하고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갈릴리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고국의 수재(水災)에 대해 의연금을 모아 기탁하였으며, 교민의 어려움을 도와주고 국어 학교 설립을 시도하는 등 교민 사회에서 활발한 봉사 활동을 펼쳤다. 1924년 갈릴리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한인 국민 회의 학무 담당 임원이 되었다. 대학 진학을 위한 학비를 벌기 위해 로스앤젤레스로 갔다. 1929년 아이오와주 더뷰크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뒤 졸업하였다. 1931년 2월 흥사단 주최의 귀국 송별회에 참석하여 화학 응용의 공산물 공장을 경영하며 교육에 종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귀국하여 사업을 하면서 수양 동우회에 가입하여 민족주의 사상을 고취하는 등 활동하였다. 1935년 미국에서 돌아온 실업가와 유학생들을 망라하여 평양에서 환구 동우회를 조직하였다. 한편, 수양 동우회는 1937년 재경성 기독교 청년 면려회에서 금주 운동을 계획하고, 그해 5월 "멸망에 함(陷)한 민족을 구출하는 기독교인의 역할 운운"이라는 인쇄물을 산하 국내 35개 지부에 발송하며 민족주의 사상을 고취하는 등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회원 150여 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4년 여의 옥고를 치르면서 재판 끝에 1941년 7월 21일 무죄로 석방되었다.

[저술 및 작품]

문명훤의 저술로는 한글 연구서 『제 글 제 문화』(1958)와 『국어의 참두루미』(1948)를 남겼고, 후손들이 발간한 자서전 『환난의 정복자』 등이 있다.

[묘소]

문명훤의 묘소는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망우 공원 묘지에 있었으나 2006년 11월 15일 국립 대전 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 한편 구리시 묘소 앞에 세운 연보비에는 '말에는 본이 있고, 글에는 법이 있다. 말과 글이 같은 민족의 사회에는 말의 본이 글의 법이오, 글의 본이 곧 말의 법이다. -「고등 한국 말의 본」에서-'라고 새겨져 있다.

[상훈과 추모]

문명훤 사후 1968년에 대통령 표창이, 1990년에는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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