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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33125
한자 朴寅煥墓
영어공식명칭 ParkInhwan Myo|Tomb of ParkInhwa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능묘
지역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로 570[망우동 산57-1]
시대 근대/현대
집필자 정남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 시기/일시 1956년 3월 20일연표보기 - 박인환 묘 조성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926년 8울 15일 - 박인환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956년 3월 20일 - 박인환 사망
현 소재지 박인환 묘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로 570[망우동 산57-1]
성격 묘소
양식 토분

[정의]

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묘지 내에 있는 시인 박인환의 묘.

[개설]

박인환(朴寅煥)[1926~1956]은 1939년 서울 덕수 공립 소학교를 졸업하고 경기 공립 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였다. 그 후 1944년 황해도 재령에 있는 명신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44년 아버지의 권유에 의해 평양 의학 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8·15 해방 후 중퇴하고 문학을 뜻을 두고 상경하여 마리 서사(茉莉書肆)라는 서점을 경영하면서 김광균(金光均)·김수영(金洙暎)·김기림(金起林) 등과 친교를 맺었다. 1946년 『국제 신보』에 「거리」라는 작품을 발표하여 시인으로 데뷔하였고, 1948년에 서점을 그만두면서 자유 신문사에 입사하였다. 1949년 경향 신문사에 입사하여 기자로 근무하면서 김병욱(金秉旭)·김경린(金璟麟) 등과 동인지 『신시론(新詩論)』을 발간하였다. 1950년에는 김차영(金次榮)·이봉래(李奉來) 등과 피난지 부산에서 동인 ‘후반기(後半紀)’를 결성하여 모더니즘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51년 육군 소속 종군 작가단에 참여하였고, 1952년 대한 해운 공사에 취직하여 미국 여행을 다녀온 후, 1955년에는 첫 시집 『박인환 시 선집』을 발표하였다. 1956년 시 「세월이 가면」, 「옛날의 사람들에게」를 발표하였다.

[위치]

박인환 묘는 망우 공원묘지 관리 사무소를 지나 오른쪽 순환로 방향으로 진행하면 연보비와 묘가 있다[묘지 번호 102308].

[변천]

박인환 묘는 1956년 3월 20일에 조성되었다.

[형태]

박인환 묘는 토분 형태로 아담하게 조성되어 있고, 묘 오른쪽 옆에 비석이 서 있다. 묘의 입구에는 어록과 약력을 표시하는 연보비가 있다.

[금석문]

연보비 전면에는 '박인환 선생(1926~1956 시인)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라고 쓰여 있고, 후면에는 '1926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 상동리에서 출생 1945 광복 후 평양의학전문학교를 중퇴하고 상경하여 종로 낙원동에서 서점 「마리서사」를 경영 1946 『국제 신보』에 「거리」라는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시인으로 데뷔 동인지『新詩論』 제1집 발간 1949 김경린,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 등과 5인 합동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였으며 모더니즘 시인으로 각광을 받음. 동인 그룹 '後半紀'를 발족시킴 1955 『박인환 시선집』 출간, 1956 「세월이 가면」, 「옛날의 사람들에게」, 「죽은 아포롱」 등을 씀'이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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