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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릉천봉예방등록』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33099
한자 綏陵遷奉禮房謄錄
영어공식명칭 Sureung Cheonbong Yebang Deungrok
분야 역사/ 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조선
집필자 이민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846년연표보기 - 『수릉천봉예방등록간행
소장처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문헌/전적
권책 1책
규격 21.6x 37.2㎝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수릉(綏陵)의 천릉에 관한 기록을 모아 만든 1846년 간행한 책.

[개설]

『수릉천봉예방등록(綏陵遷奉禮房謄錄)』은 1846년(헌종 12) 추존왕 익종(翼宗)[1809~1830]의 수릉을 천릉(遷陵)[능을 옮기는 일]하던 중 각 기관 사이에 오고 간 공문 가운데 예방(禮房) 소관의 것들을 모아 실은 책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예방은 조선 시대 승정원 소속의 육방(六房) 중 하나로, 예전(禮典)을 담당하였다.

익종은 순조의 세자로 익종의 아들인 헌종이 즉위한 후 왕으로 추존되었다. 익종은 1830년 세자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무덤에 '능'이라는 호칭을 쓸 수 없었다. 따라서 본래 연경묘(延慶墓)라는 이름으로 묘가 조성되었다. 이후 익종으로 추존되자 묘 또한 능으로 승격되어 수릉이라 하였다.

수릉은 현재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두 번의 천릉을 거쳤다. 본래 연경묘가 조성되었던 곳은 현재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경종(景宗)의 의릉(懿陵) 왼쪽 언덕이었다. 그러나 1846년(헌종 12)에 풍수상으로 좋지 않은 위치라 하여 양주 용마봉[현 서울특별시 광진구 용마산]으로 천릉하였다가, 1855년(철종 6)에 다시 천릉하여 구리 동구릉 경내의 현재 위치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후 1890년(고종 27)에 신정 왕후가 승하하자 수릉을 합장 능의 형태로 조성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본 등록은 두 차례의 천릉 중 1846년의 천릉과 관련된 기록을 모아서 간행한 것이다.

[저자]

『수릉천봉예방등록』은 1846년 수릉 천릉과 관련된 공문 중에서 예방 소관의 것들을 수록한 등록이다. 그러므로 예방에서 간행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간행자는 알 수 없다.

[편찬/간행 경위]

『수릉천봉예방등록』수릉 천릉과 관련된 사항을 참고 자료로 남기기 위해 간행한 것으로 추정되나, 명확한 간행 경위는 알 수 없다.

[형태/서지]

『수릉천봉예방등록』은 필사본이며, 1책 9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크기는 가로 21.6㎝, 세로 37.2㎝이다.

[구성/내용]

『수릉천봉예방등록』의 서두에는 목록이 제시되어 있다. 수록된 공문은 총 77건이며, 생산된 순서에 따라 정리되어 있다. 공문의 내용은 인원 조달, 도감 담당자 결정, 택일 및 예물 마련 등으로 다양하다. 1846년 천릉과 관련한 기록인 『익종 수릉 산릉도감의궤』『익종 수릉 천봉도감의궤』(1846년)를 참고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수릉 천봉 작업 중 예방이 관장한 공문들을 수록한 것으로, 예방의 담당 사무를 확인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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