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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정순왕후원릉개수도감의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33033
한자 英祖貞純王后元陵改修都監儀軌
영어공식명칭 Yeongjo Jeongsun Wanghu Wolleung Gaesudogamuigwe
분야 역사/ 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지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810년연표보기 - 『영조정순왕후원릉개수도감의궤 간행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7년 6월 - 『영조정순왕후원릉개수도감의궤 유네스코(UNESCO) 세계 기록 유산 등재
소장처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문헌/전적
간행자 개수도감
권책 1책
행자 12행 24자
규격 32.5×46.3㎝[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 춘추관 분상 건 기준]
어미 상내향 이엽화문 어미
권수제 가경십오년경오팔월 일 개수도감의궤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영조정순왕후의 능인 원릉(元陵)을 수리한 일을 기록하여 1810년에 간행한 의궤.

[개설]

『영조정순왕후원릉개수도감의궤(英祖貞純王后元陵改修都監儀軌)』는 1810년 원릉을 수리한 일을 기록한 의궤이다. 분상용 의궤 3건이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있다. 어람용 의궤는 현재 전하지 않는다. 1776년 영조가 사망한 후 원릉이 조영되었고, 1805년 정순왕후(貞純王后)가 사망하자 원릉에 함께 묻혔다. 원릉은 현재 구리 동구릉 내에 있다.

[저자]

『영조정순왕후원릉개수도감의궤』원릉의 수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한 개수도감에서 편찬하였다. 도감의 총 책임자인 도제조(都提調)는 의정부(議政府) 좌의정(左議政) 김재찬(金載瓚)이 맡았다.

[편찬/간행 경위]

원릉의 수리가 끝난 후 자세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편찬하여 1810년에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영조정순왕후원릉개수도감의궤』는 1책 42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소장 춘추관 분상용의 크기는 가로 32.5㎝, 세로 46.3㎝이며, 본문 종이는 저주지(楮注紙)[왕실이나 중앙 관아에서 문서 작성이나 왕실 배포용 책자를 만들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닥나무 껍질로 만든 두꺼운 종이]를 사용하였다. 본문 한 쪽에 총 12행, 행당 24자의 글자가 기록되어 있다. 판심(版心)[접어서 양면으로 나눌 때 책장 가운데 접힌 곳]에는 상내향 이엽화문 어미(上內向二葉花紋魚尾)[물고기 꼬리 모양의 검은 위 어미가 아래쪽을 향하며, 어미 부분에 2개의 화문이 있는 형태]를 그렸다. 권수제(卷首題)[본문 앞에 나오는 제목]는 '가경십오년경오팔월 일 개수도감의궤(嘉慶十五年庚午八月 日 改修都監儀軌)'이다.

[구성/내용]

『영조정순왕후원릉개수도감의궤』는 서두에 목록이, 이어서 도설(圖說), 좌목(座目), 계사(啓辭), 별단(別單), 이문(移文), 내관(來關), 감결(甘結) 등이 있다. 도설은 원릉 수리에 관한 채색 그림과 설명을 실은 것이고, 좌목은 도감 관원들의 명단이다. 계사는 작업과 관련하여 왕에게 올린 보고로서, 원릉 수리 작업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별단은 수리 작업에 참여한 인물들에 대한 포상 내역이고, 이문, 내관, 감결 등은 관련 관서 간 오고 간 공문서를 모아 실은 부분이다. 그 외에 도감의 작업에 소요된 물품들의 내역 및 사용처, 물품 제작에 참여한 공장(工匠)들의 명단도 함께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영조정순왕후원릉개수도감의궤』는 조선 후기 왕릉의 수리 보수 작업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다. 소요된 물품 및 공장들에 대한 기록도 함께 실려 있어 조선 후기 사회 경제사 연구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2007년 6월 제8차 유네스코(UNESCO) 기록 유산 국제 자문 위원회에서 조선 왕조의 의궤 전체를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하여, 『영조 정순왕후 원릉 개수도감의궤』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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