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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원릉개수도감의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33030
한자 英祖元陵改修都監儀軌
영어공식명칭 Yeongjo Wolleung Gaesudogamuigwe
분야 역사/ 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지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783년연표보기 - 『영조원릉개수도감의궤 간행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7년 6월 - 『영조원릉개수도감의궤 유네스코(UNESCO) 세계 기록 유산 등재
소장처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문헌/전적
간행자 개수도감
권책 1책
행자 12행 24자[자수부동(字數不同)]
규격 33.0×46.0㎝[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 예조 분상 건 기준]
어미 상하 내향 이엽화문 어미
권수제 건륭사십팔년계묘팔월 일 개수도감의궤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영조의 능인 원릉(元陵)을 수리한 일을 기록하여 1783년에 간행한 의궤.

[개설]

『영조원릉개수도감의궤(英祖元陵改修都監儀軌)』는 1783년에 영조의 능인 원릉을 고쳐 수리한 일을 기록한 의궤로, 분상용 4건이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있다. 원릉은 현재 구리 동구릉 내에 있다.

[저자]

『영조원릉개수도감의궤』원릉의 보수를 위해 설치한 개수도감(改修都監)에서 편찬하였다. 도감의 총 책임자인 도제조(都提調)는 행판중추부사(行判中樞府事) 정홍순(鄭弘淳)이 맡았다.

[편찬/간행 경위]

원릉의 보수가 끝난 후 자세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편찬하여 1783년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영조원릉개수도감의궤』는 1책 50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 예조 분상 건 의궤는 크기가 가로 33.0㎝, 세로 46.0㎝이고, 본문 한 쪽에 12행, 행당 24자의 글자가 기록되어 있으나 행당 글자 수가 모두 같지는 않다. 판심(版心)[접어서 양면으로 나눌 때 책장 가운데 접힌 곳]에는 상하 내향 이엽화문 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물고기 꼬리 모양의 검은 2개 어미 가운데 위 어미가 아래쪽, 아래 어미가 위쪽을 향하며, 어미 부분에 2개의 화문이 있는 형태]를 그렸으며, 권수제(卷首題)[본문 앞에 나오는 제목]는 '건륭사십팔년계묘팔월 일 개수도감의궤(乾隆四十八年癸卯八月 日 改修都監儀軌)'이다. 본문 종이는 저주지(楮注紙)[왕실이나 중앙 관아에서 문서 작성이나 왕실 배포용 책자를 만들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닥나무 껍질로 만든 두꺼운 종이]를 사용하였다.

[구성/내용]

『영조원릉개수도감의궤』는 서두에 목록이 실려 있다. 이어서 도설(圖說), 좌목(座目), 계사(啓辭), 도감 사목(都監事目), 관련 공문서 등이 실려 있다. 도설은 소요된 기물의 그림과 설명을 정리한 것이다. 좌목은 도감에서 일한 관원들의 목록이고, 계사는 왕의 전교와 신하들이 올린 보고 등을 기록한 것이다. 1783년 7월 10일부터 내린 큰비로 원릉 상부의 흙이 떠내려가 없어진 것을 예조에서 보고하여 원릉의 보수 작업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도감의 운영 규칙이 담긴 도감 사목과 관련 관서(官署) 간 오고 간 공문서, 보수 작업에 참여한 공장(工匠)의 명단도 함께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영조원릉개수도감의궤』는 왕릉 수리의 절차와 내용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작업에 참여한 공장들의 명단도 기록되어 있어 당시 조선의 사회 경제사 연구에도 활용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2007년 6월 제8차 유네스코(UNESCO) 기록 유산 국제 자문 위원회에서 조선 왕조의 의궤 전체를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하여, 『영조 원릉 개수도감의궤』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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