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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국장도감의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33028
한자 英祖國葬都監儀軌
영어공식명칭 Yeongjo Gukjangdogamuigwe
분야 역사/ 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지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776년연표보기 - 『영조국장도감의궤 간행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7년 6월 - 『영조국장도감의궤 유네스코(UNESCO) 세계 기록 유산 등재
소장처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문헌/전적
간행자 국장도감
권책 2책
행자 12행 24자[자수부동(字數不同)]
규격 34.0×45.1㎝[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 오대산 사고 분상 건 기준]
어미 상하 내향 이엽화문 어미
권수제 건륭사십일년병신삼월 일 국장도감의궤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원릉(元陵)에 묻힌 영조의 국장 절차를 기록하여 1776년에 간행한 의궤.

[개설]

『영조국장도감의궤(英祖國葬都監儀軌)』는 1776년 사망한 영조의 국장 절차를 기록한 의궤이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분상용 2건이 현재 전하고 있다. 원릉은 현재 구리 동구릉 내에 있다.

[저자]

『영조국장도감의궤』는 국장을 위해 임시로 설치한 국장도감(國葬都監)에서 간행하였다. 도감의 총 책임을 담당한 총호사(摠護使)는 의정부(議政府) 좌의정(左議政) 김상철(金尙喆)이 맡았다.

[편찬/간행 경위]

『영조국장도감의궤』는 국장 절차가 끝난 후 자세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1776년에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영조국장도감의궤』는 2책 62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대산 사고 분상용의 크기는 가로 34.0㎝, 세로 45.1㎝이다. 본문 한 쪽에 총 12행, 행당 24자의 글자가 기록되어 있으며, 행당 글자 수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판심(版心)[접어서 양면으로 나눌 때 책장 가운데 접힌 곳]에는 상하 내향 이엽화문 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물고기 꼬리 모양의 검은 2개 어미 가운데 위 어미가 아래쪽, 아래 어미가 위쪽을 향하며, 어미 부분에 2개의 화문이 있는 형태]가 그려져 있으며, 권수제(卷首題)[본문 앞에 나오는 제목]는 '건륭사십일년병신삼월 일 국장도감의궤(乾隆四十一年丙申三月 日 國葬都監都廳儀軌)'이다. 본문 종이는 저주지(楮注紙)[왕실이나 중앙 관아에서 문서 작성이나 왕실 배포용 책자를 만들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닥나무 껍질로 만든 두꺼운 종이]를 사용하였다

[구성/내용]

『영조국장도감의궤』는 서두에 목록이 실려 있으며, 이어서 좌목(座目), 계사(啓辭), 장계(狀啓), 이문(移文), 내관(來關), 품목(稟目), 감결(甘結), 예관(禮關), 의주(儀註), 논상(論賞) 및 각방의궤(各房儀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좌목은 도감 구성원의 명단이고, 계사는 행사와 관련하여 왕에게 올린 글과 그 비답(批答)[임금이 상주문의 말미에 적는 가부의 대답]이다. 장계와 이문, 내관, 감결, 예관 등은 관련 관서 간 오고간 공문서를 실은 것이고, 의주는 절차의 구체적인 진행 순서를 기록한 것이다. 논상은 행사 후의 포상 내역이고, 각방의궤는 도감 각 방의 운영 사항을 기록하고 있는데, 국장을 치르는 데 필요한 각종 물품 및 물품 제작을 담당한 공장(工匠)까지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일방의궤의 말미에는 채색 도설과 반차도(班次圖)[궁중의 각종 행사 장면을 그린 그림]가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영조국장도감의궤』는 조선 후기 국왕의 국장 절차를 상세히 보여 주고 있다. 채색 도설과 반차도도 함께 전하고 있어 조선 후기 왕실의 장례 절차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2007년 6월 제8차 유네스코(UNESCO) 기록 유산 국제 자문 위원회에서 조선 왕조의 의궤 전체를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하여, 『영조국장도감의궤』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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