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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 신도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32164
한자 洪常神道碑
영어공식명칭 Memorial Stone for Hong Sang
분야 역사/ 전통 시대
유형 유적/비
지역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산7-2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남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514년(중종 9)연표보기 - 홍상 신도비 건립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457년(세조 3) - 홍상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513년(중종 8) - 홍상 사망
현 소재지 홍상 신도비 -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산7-2지도보기
성격 신도비
양식 석상
관련 인물 홍응
재질 검은 편암이 석인 돌
크기(높이) 183㎝[높이]|22.5㎝[두께]
크기(폭) 73㎝
소유자 남양 홍씨 문중
관리자 남양 홍씨 문중

[정의]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인 홍상의 신도비.

[건립 연혁]

홍상(洪常)[1457~1513]은 조선 덕종[성종의 아버지, 의경 세자]의 부마로서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자강(子剛)이며 좌의정 충정공 홍응(弘應)의 아들이다. 1466년(세조 12)에 추존왕 덕종의 딸 명숙 공주(明淑公主)와 혼인하여 당양위(唐陽尉)에 봉해졌으며 세조의 사랑을 받아 오위 도총관(五衛都摠管)이 되었다. 연산군 때에는 수록 대부(綏綠大夫)가 되었다. 1504년(연산군10)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함평으로 유배되었다가 안성으로 옮겨졌으며 다시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1506년(중종 1) 중종 반정으로 풀려나 조정에 복귀하여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었다. 홍상은 도량이 넓고 온화한 성품으로 모든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아, 그가 부마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홍상의 묘는 어머니 정경부인 이씨의 묘소 바로 아래에 있고,1513년(중종 8)에 세워진 묘비가 서 있다. 1514년에 세워진 이수 방부형(螭首方趺形)인 신도비가 묘역의 하단 좌측에 서쪽을 향해 서 있다.

[형태·구성]

홍상 신도비의 전액(篆額)[전자체(篆字體)로 쓴 현판이나 비갈(碑碣)의 글씨]은' 홍공신도명(洪公神道銘)'으로, 이수(螭首)[건축물이나 공예품 따위에 뿔 없는 용의 모양을 아로새긴 형상]의 발톱이 양끝에서 비신 쪽으로 모아져 전액(篆額) 부분을 보호하고 있어서 두전(頭篆)의 효과을 보이며, 이수와 비신은 한 돌로 이루어져 있다. 이수는 비례가 안정적이고 입체감이 있다. 신도비는 비신 높이 183㎝, 폭 73㎝, 두께 22.5㎝에 용을 새긴 관석[52㎝]을 올렸으며, 대좌에는 연화문과 안상문이 새겨진 화려한 형태이다. 글은 성균관 사성지제교(司成知製敎) 이행(李荇)이 짓고, 사헌부 장령 김희수(金希壽)가 썼다.

[관련 사건·일화]

비문에는 홍상의 가계도와 성품, 명숙 공주와 혼인하게 된 일화가 쓰여 있고, 중반부는 관직 생활과 연산군의 미움을 사 갑자사화 때 제주도에 귀양갔다가 중종에 의해 복직되어 원종공신에 봉해진 내용과 홍상의 장례에 관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가치 및 의미]

16세기의 이수 방부형 신도비로 15세기에 조성된 아버지 홍응의 신도비와 비교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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