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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32044
한자 梵窟寺佛粮施主記
영어공식명칭 Beomgulsa Bulryang Sijugi
분야 역사/ 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산57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상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범굴사 불량 시주기 -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산57지도보기
성격 유적/유적(일반)

[정의]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아차산에 있는 범굴사의 논밭 거래와 관련된 시주인들의 명단을 암벽에 기록한 각명(刻銘).

[개설]

범굴사 불량 시주기(梵窟寺 佛粮 施主記)범굴사에서 논과 밭을 구입할 때 관련된 사람들의 명단을 암벽에 새겨서 기록한 것이다. 범굴사는 7세기 중반 신라 시대에 창건된 후 어느 시점에 폐사되었다. 이후 18세기 중반에 재건되었지만 임오군란(壬午軍亂)으로 건물들이 모두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고, 20세기 초반 새로 건물을 지으면서 현재의 명칭인 대성암(大聖庵)으로 바뀌었다고 추정된다.

[건립 경위]

범굴사 불량 시주기는 신라 시대인 647년(진덕 원) 의상 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한 범굴사가 고려 말기 이후 어느 시점에 폐사되었다가 1750년(영조 26) 방지성(方智性) 거사에 의해 재건된 후 새겨졌다고 여겨진다. 특히 제목이 '불량 시주인(佛糧施主人)'인 불량 시주기와 범굴사의 재산을 기록한 범굴사 불량권(梵窟寺佛糧券)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인다. 그러므로 범굴사 불량권이 조성되었다고 추정되는 1790년·1850년·1910년 중 한 시점과 유사한 시기에 범굴사 불량 시주기도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위치]

범굴사 불량 시주기는 현재 아차산 중턱에 있는 대성암의 대웅전 뒷편 암벽에 새겨져 있다. 범굴사 불량 시주기 왼쪽에는 삼성각이, 오른쪽에는 의상 대사의 전설이 전하는 바위 구멍이 있다. 아울러 범굴사 불량 시주기의 좌측으로 바로 이어지는 암벽에는 범굴사 불량권이 새겨져 있다.

[형태]

범굴사 불량 시주기는 직사각형에 가까운 판석 모양으로 다듬어진 암벽에 새겨져 있다.

[현황]

범굴사 불량 시주기대성암이 1882년(고종 19)의 임오군란, 1950년부터 1953년까지의 한국 전쟁 및 1992년의 화재 등으로 건물들이 여러 차례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음에도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범굴사 불량 시주기범굴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사람들의 명단이다. 범굴사 불량 시주기에는 조선 왕실의 내명부(內命婦)에 속한 궁인(宮人)부터 일반인까지 다양한 계층의 신도들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를 통해 범굴사가 종교적·사회적으로 상당히 높은 위상을 지녔던 사찰이었음을 알려 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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